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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 리뷰 l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을 믿는 이유 영화 말아 리뷰 l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을 믿는 이유

영화 말아 리뷰 l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을 믿는 이유

2022. 10. 10. 09:34Film

말아 (ROLLING) 2021
감독 : 곽민승
출연 : 심달기, 정은경, 우효원

 

줄거리

25살인 주리는 백수다. 거의 모든 시간을 게임을 하고 담배를 태우며 보낸다. 배가 고프면 배달음식을 먹는다. 그러니 밖에 나갈 일도,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주리의 엄마는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지방에 가야 하니 그동안 주리가 신나라 김밥집의 운영을 맡지 않으면 자취방을 빼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김밥을 말아야만 한다.

 

※ 영화 <말아>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을 믿는 이유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팬더믹 이전엔 퇴근길에 자주 김밥을 사 갔다. 집 근처에 있는 가게였는데 그 집 참지 김밥이 참 맛있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많이 먹진 않지만 종종 생각날 때마다 잘 사 먹곤 하는 음식이다. 별다른 재료가 없어도 단무지와 우엉 정도만 있어도 김밥 맛이 나기 때문에 아쉬울 땐 내가 직접 빈약한 재료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저렴하고 맛있어 사 먹기는 쉽지만 김밥은 은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서 소금간과 참기름으로 밥 맛을 올려야 하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데치거나 볶거나 양념하여야 하기에 정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김에 밥을 고르게 피고 재료를 조금씩 올려 예쁘게 말아 썰어내는 건 또 얼마나 기술이 필요한가? 밥이 너무 많으면 맛이 없으며 속재료를 고르게 올리지 않으면 썰 때 옆구리가 터지는 경우가 다반수다. 

 

주인공인 '주리'는 김밥집 딸이다. 나이는 스물다섯. 게임을 즐겨한다. 담배와 술을 좋아하고 배가 고프면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가끔 전 남자 친구 인스타를 들여다보다가 좌절하기도 하며 그러다가 또 담배 한입, 술 한입.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다름이 아닌 부동산 중개인이다. 이 집을 내놨기 때문에 집을 보러 왔다 했다. 주리가 엄마에게 전화하니 집을 내놨다고 했다. 엄마는 그 집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할머니를 돌보러 지방에 가 있는 동안 김밥집을 홀로 운영하라고 한다. 

 

주리가 참 착한 게 별말 없이 김밥 싸는 법을 연습한다. 엄마가 하란대로 하고 피드백도 받아가면서 끊임없이 연습한다. 김밥집 딸이면 김밥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꽁다리만 모아다가 먹는 모습이나 매끼 김밥을 먹었는데도 술안주로도 김밥을 선택할 만큼 김밥을 좋아하는 친구다.

 

그렇게 주리는 김밥집을 운영하게 됐다. 

 

이웃을 만나고, 손님들을 만나며, 그들과 얕고 깊은 유대관계를 쌓아간다. 집에서 게임과 술과 담배만 하던 그가 자기 전 다음날 해야 할 투두리스트를 작성하고 마트에 가 식재료를 구입하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한 줄을 싸기도 버거웠던 그가 몇십 줄에 해당하는 포장 예약을 소화하기도 한다. + 직접 배달까지.

 

가게를 닫고 벌금을 물어가면서 손님을 돕기도 하는 주리는 괜히 예쁜 새 옷도 사 입어 본다. 배달 때문에 산에 간 김에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도 한다. 그는 빵집 이모가 구워다 준 빵을 먹기도 하고, 좋아하는 깻잎 반찬에 점심을 먹기도 한다. 

 

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인스타그램을 보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주리가 예쁜 옷도 사 입고 산에도 오르고 집밥을 먹고 김밥을 싼다.

 

그렇게 주리의 삶에 조금씩 생기가 돈다. 아주 미세한 변화들이지만 그것은 분명 주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오랜만에 취업에 도전한 주리는 그동안 뭐했냐. 토익점수가 너무 낮다. 등의 소리를 듣지만, 그거쯤이야 뭐. 

 

나는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작고 사소한 것들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너무 미미해서 알아차리기도 힘든 것들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천천히 느리게 가져올 변화의 힘을 믿는다.

 

주리는 그런 내 믿음을 여실히 보여준 친구였다.

주리의 삶은 아주 사소하게 달라졌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그럼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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