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6. 15:49ㆍTV series
기대를 많이 했었던 에피소드였다.
박지선 교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어떨까.
2007년 개봉한 <밀양>은 내가 이창동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난 작품이다. 난 밀양을 보고 이창동 감독의 모든 작품을 모조리 해치웠는데 그가 만든 작품은 하나같이 무게가 거대해서 하나의 작품을 보고 나면 며칠은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다른 작품보다도 <밀양> 속 신애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신애가 처한 상황이 내가 보기엔 지옥도와 같았기 때문이다. 난 신애를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 같았다. 그가 감내하여야 하는 삶의 무게를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면서도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불행이 나에게 옮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비겁한 생각을 할 정도로 내 눈에 비친 신애의 상황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밀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개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를 혼자 키운다고 혹여나 무시라도 받을까 봐 새 터전에서 사람들에게 돈이 많다는 뉘앙스를 풍길 때.
아들을 잃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시어머니에게 독한 년 소리를 들을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너져 내렸던 신애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에게 의지했을 때.
그 하나님이 자신만을 구원해준 게 아니라 자신의 원수까지도 품어주어 용서받았다고 했을 때.
'보여? 보여?' 비웃고 조롱하며 당신을 믿는 이들이 얼마나 추잡한지를 보여줄 때.
결국 원장의 딸아이에게 머리를 맡기지 못하고 혼자서 머리를 자를 때.
신애가 무너지는 순간마다 늘 신애의 곁을 지키던 한 줌의 햇살 같았던 종찬의 마음까지.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남편. 바람까지 폈던 남편과의 기억을 애써 미화하며.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말하며. 연고가 하나도 없는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온 신애의 심정을 생각해봤었다. 신애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어떤 삶을 바랐을까.
천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을 손에 쥐고 내려온 밀양에서 사람들에게 땅을 알아봐 달라고 말하는 신애의 모습은 허세보단 처연함에 가까웠다. 혹여나 사람들이 자신을 만만하게 볼 것을 우려해서 나온 행동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박지선 교수는 원장이 어떻게 유괴를 저지르게 됐는지를 파고든다. 멜로가 아니라 범죄 영화로서 접근한 것이다. 같이 되짚어보니 원장이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 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음험한 눈빛을 짓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해대던 것을 왜 알아보지 못했던 건지.
이번 에피소드를 보며 <밀양>에서 등장했던 범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희대의 ㅆ소리를 늘여놓은 것이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를 보았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너무나 당연한 말을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온당 피해받은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는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커녕 하나님 할아버지도 고통받은 피해자를 대신해 죄를 사하여줄 수 없다.
영화 <헤어질결심>에서 해준이 그랬듯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기대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슬프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가 겪는 아픔을 손톱만큼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얄팍한 마음으로 되지도 않는 교리를 들먹이며 용서를 강요하는가.
밀양에 등장했던 수많은 장면 중에서 가장 날 아프게 했던 것은 신애가 한낮에 소파에 누워 남편이 코 고는 소리를 흉내 내던 것이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먹먹한 감정이 일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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