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5. 12:50ㆍTV series
매주 금요일 지선 씨네마인드를 챙겨 보고 있다.
2화 타짜에서는 대중들에게 안쓰러운 연민의 이미지인 '정마담'이 왜 메인 빌런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번 3화에선 뮤지컬 영화인 <위플래쉬>에서 위계의 고하가 존재하는 수직적 관계 속에서 교묘하게 진행되는 '가스라이팅'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확실한 건 박지선 교수의 '범죄 심리학자'라는 직업적 특성을 거친 해석을 통해서 영화를 감상할 때 다각적인 시각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왜 저런 행동을 하게 된 건지. 작은 단서 속에서 그 사람의 성정을 짐작하고, 어떤 트라우마와 어떤 사고를 지니고 사는 사람인지를 추론하는 것이 재밌다. 피해자의 시선에서도, 가해자의 시선에서도 놓칠 것이 없다.
채찍질이라는 뜻을 함의한 <위플래쉬>는 단순히 곡의 이름이라기보다,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택했던 교수의 행동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위플래쉬>처럼 가스라이팅을 다룬 작품을 소개한다.
가스 라이팅은 다양한 관계, 다양한 상황, 다양한 시대에서 조금씩 변주되어 우리 삶을 파고든다.
가스등 (1944)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스 라이팅'의 어원이 된 영화로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이모가 사망한 뒤 집을 물려받은 유일한 상속녀 폴라는 성악 수업을 듣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길에 올랐고 그러던 도중 그레고리와 만나 사랑에 빠져 학업을 포기하고 그와 결혼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모의 죽음부터 이탈리아에서의 첫 만남까지 모두가 그레고리의 철저한 계획으로 진행된 것이다. 폴라는 처음부터 그에게 속았다. 그레고리는 폴라가 품고 있는 견고한 믿음과 고결한 사랑을 이용해서 천천히 가스라이팅을 진행한다. 폴라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로 만든다.
똑똑했던 폴라가 서서히 가스라이팅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의심하고 정식적으로 황폐해지며 그에게 닥친 모든 상황들을 혼란스러워한다.
폴라와 그레고리처럼 신뢰와 사랑으로 구축된 관계 속에서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쉬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비저블맨 (2020)
세실리아는 남자 친구 안드레아로부터 장기간의 가스 라이팅을 받아왔다. 안드레아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터에다가 소시오패스, 나르시스트를 겸한 사람으로 악마 그 잡채인 인물.
영화적 장치 때문에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안드레아의 공작질로 세실리아는 주변의 모든 인물들로부터 고립된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객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환기가 될 테고,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세실리아에는 그런 장치가 없으니 남들에게는 그저 혼자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1944년에 개봉한 <가스등>과 2020년에 개봉한 <인비저블맨>은 각기 다른 시대를 대변하지만, 그레고리와 안드레아의 행동은 소름 끼치게 결이 같다.
나를 찾아줘 (2014)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아내인 에이미가 실종됐다. 유년기 때의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인 아내는 유명인사이기에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의 관심이 그의 부부에게로 집중된다.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두었던 편지와 곳곳에 감추어놓은 단서들을 찾아가며 남편인 닉을 유력한 용의자라고 여기게 된다.
닉은 에이미를 가스라이팅하고, 에이미는 닉과 스스로를 가스 라이팅 한다.
닉은 에이미가 스스로 자신이 이런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말하며 에이미는 그런 닉의 기대에 부흥하듯 점점 더 소시오패스가 되어 간다. 에이미는 닉을 자신과 동일한 지위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있으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거지. 에이미는 나에게 호감이 있는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호의를 베풀 수 있을지를 잘 계산하는 사람이다. 그에겐 사람이 도구일 뿐이니까.
디 액트 (2019)
2015년 미국을 뒤흔든 집시 로즈 블랜차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TV 시리즈이다. 엄마는 하반신 장애와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것으로 미디어의 관심도 받았다.
사실 딸의 몸에는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었으며, 엄마가 딸을 일부러 아프고 병들게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사고자 했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었다. 집리 로즈는 자신의 실제 나이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학대를 받아왔는데 결국 엄마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재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HBO의 <몸을 긋는 소녀>나 영화 <RUN>을 추천드린다.
2020.06.27 - [Film] - 가스 라이팅의 시초_영화 가스등 줄거리 결말 해석
2020.04.15 - [Film] - 인비저블맨 줄거리 결말 해석_블룸하우스 제작 영화
2020.04.26 - [Film] - 나를 찾아줘(GONE GIRL)결말 줄거리 스포_그럼에도 난 에이미 편이야
2020.11.26 - [Film] - 영화 런 결말 스포 후기 리뷰 줄거리 l 도망쳐
2020.09.08 - [TV series] - 몸을 긋는 소녀 l 뮌하우젠 증후군과 트라우마
가스 라이팅은 수직적인 관계에서도 곧잘 발생하지만, 믿음과 신뢰가 기반이 된 관계에서도 잘 발생한다. 그런 관계일수록 상대를 의심하기보단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하게 된다. 그렇기에 위험성으로 따진다면 후자가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라는 말과 함께 건네는 가스라이팅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가.
스스로를 얼마나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가.
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멋대로 상정 짓는 사람이라면. 은연히 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의심하시기를 권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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