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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리뷰 글쓰기의 최전선 리뷰

글쓰기의 최전선 리뷰

2020. 5. 5. 00:10Book

글쓰기최전선

은유

 

 

 

※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같은 리뷰입니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쓰기의 말들보다 앞서 읽은 책이다. 두 권을 연달아 읽어서 두 책의 리뷰가 뒤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먼저 소개해드린 쓰기의 말들보다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어 더 구체적이며 최적화된 책이다. 은유 작가가 글쓰기 강연을 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부록에는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였던 학인들이 내놓은 작품 세 개가 함께 실려있는데 마치 신춘문예에 등단한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전문 작가가 아님에도 이렇게도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고 탄복하였다.(물론 무척이나 부럽기도 하였다.)

 

 

은유 작가가 문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쓰기의 말들 때문에 알고 있지만, 글쓰기의 최전선에서도 다양한 문장과 시를 인용하셨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읽어 보려고 인용하신 책들과 시집을 노트에 따로 적어 정리해두었다. 난 이미 책 두 권만으로 그녀에게 반해버렸기 때문에 은유 작가가 쓴 책은 물론 인용한 모든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전태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 졌고, 남의 아픔을 쉬이 가볍게 넘기지 못했던 그가 궁금해져서 전태일 평전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은유 작가 때문이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은유 작가는 솔직하지 않은 글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 같다. 매번 강조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글, 목적이 없는 글. 그냥 써 내려간 글. 거짓인 글. 척하는 글. 을 경계하라고 하시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나도 속이는 글을 많이 썼다. 초등학생 때 독후감을 써오라는 글이 있으면, 난 거짓으로 글을 잘 쓰곤 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거나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데도 '아. 이 부분에서 적당히 감동받았다고 쓰면 되겠다.' 하는 것들. 이제는 검사받는 독후감을 쓸 일이 없으니 내 글을 거짓으로 쓸 필요는 없다.

 

 

단지 글뿐이어도 내가 쓴 글을 누가 보는 것이 부끄러운데 여기에서 얼마큼을 더 드러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던 학생들을 보면 저마다의 아픔이 다 있더라. 차마 너무 끔찍하여 내 입에 담기에도 껄끄러운 일을 겪은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도 자신의 아픔을 글로써 드러내고 상처를 치유해갔다고. 나는 별 것 없는 내 이야기도 하기가 꺼려지는데 이건 조금씩 연습을 해보아야지.

 

 

계몽,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깨소금을 치듯 글도 기어코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다. 기껏 자기 경험과 생각에 근거해 잘 써놓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글이 평범해진다. 그런데 이 교훈적인 마무리도 습관이다.

서사를 좋아하는 나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것에 목적을 둔 이야기를 굉장히 싫어한다. 독자나 관객이 자연스럽게  감응하는 것이 아닌, "여기서 넌 울어야 해. 여기서 넌 감동받아야 해. 여기가 바로 네가 애국심을 고취해야 하는 부분이야." 하는 것들. 내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으로 난 이러한 것들을 촌스럽다고 표현한다. 신파. 난 촌스러운 사람이 싫다. 촌스러운 이야기가 싫다. 내가 말하는 '촌스러운'의 의미는 속이 빤하게 보이는 것이다. 결말이 너무 빤히 보이는 전개나 지극히 선하거나 지극히 악한 캐릭터만 나오는 이야기를 난 촌스럽다고 표현한다. 

 

 

시놉시스를 보고 영화 인천 상륙작전을 정말이지 기대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화 속으로를 만들었던 이재한 감독. 내가 좀 더 살펴봤었어야 했는데. 포화 속으로 2를 만들었지 뭐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말하는데, 이재한 감독은 정말 각성해야 한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형편없는 시나리오였다. 맥아더 장군 역할을 맡았던 리암 니슨의 대사 하나하나가 나를 지하 저 끝까지 처박는 것 같았다. 영화의 흐름과 어울리지도 않는 뜬금포로 오그라드는 명언을 뱉을 때마다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항마력이 딸린다는 것을 직접 실감하였다. 난 그런 이야기가 싫다. 뻔하고, 눈에 훤히 보이는 수가 싫다. 관객들을 대놓고 가르치려고 하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는 영화를 싫어한다. 영화 안에 세련되게 잘 녹여낸다면 대놓고 작정하지 않아도 영리한 관객들은 감독의 의미를 헤아리기 마련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대놓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 교훈은 그런 것이다. 유치원생을 상대로 쓴 글이 아닌 이상 섣불리 누구를 가르치려 교훈적인 이야기를 '대놓고' 담는 것은 위험하다. 난 그런 글이 싫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의 척도는 물론 화폐다. 내 앎이, 내 삶이 교환가치가 있는가. 제도 교육은 남보다 교환가치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이걸 보고 내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내가 몇 학년 때까지인지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때의 담임 선생님을 꽤나 싫어했기 때문이다. 50대 중반 정도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차별이 심하였다.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반 아이들 다 보는데서 모욕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나는 공부를 곧잘 하는 학생이었지만 붙임성이 좋거나 살가운 학생이 아니었는데 내가 공부까지 못했으면 날 얼마나 싫어했을지 눈에 훤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걸로 봐선 기독교 신자였던 것 같다. 하나님 믿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밖에 못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자기가 커피를 ㅊ먹고 립스틱이 잔뜩 묻은 머그컵을 왜 우리에게 닦게 했는지 모르겠다. 고무장갑이나 적당한 세제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설사 고무장갑이나 세제가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초등학생이면 고사리 같은 손이었을 텐데 다 큰 어른이 지 컵도 혼자 못 닦나.

 

 

어느 날 교실 청소를 하다가 담임 선생님 책상에 있는 조그만 편지글을 보았다. 반 아이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였는데 다른 건 기억이 안 나고 이것 만큼은 기억이 난다. "꼭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게요." 그 친구는 착하고 상냥했던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가 쓴 그 편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 사회에 필요한 사람. 훌륭한 사람. 그 선생님은 항상 우리를 보면서 "너네들이 너무 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지만 그런 너희를 포기하려고 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고 수십 번을 말했다. 초등학생에게 할 말인지 모르겠다. 다 큰 어른이 돼서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당시 크게 말썽을 피운 친구는 없었다. 초등학생이 말썽을 피워봤자 뭘 얼마나 피우겠는가. 무엇보다도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징그러워. 그 사람.

 

 

언젠가 효리언니가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던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도 돼. 괜찮아." 그놈의 훌륭한 사람이 되란 말과 그놈의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강박적으로 학습하며 살아왔는지. 안도현  시인은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모진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우리는 전부 훌륭한 사람이다.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부록에 소개한 3명의 학인의 글은 보면서 깜짝 놀랐다.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자신의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토대로 쓴 효주 씨의 글도 그랬지만, 가장 가까운 엄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두 개의 글이 더 그랬다. 가장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터뷰하여 써 내려간 글. 글의 말미에 사실은 장수 씨가 화자의 아버지였다고 쓰여진 부분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가 아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가 견뎌온 인생을 보니 충분히 납득할만한 사연이 있는 인생이었음을 알아버렸다. 어디 신춘문예에 등단되었다는 글에 조금도 빠지지 않는 글이어서 학인들의 글을 보며 탄복했고, 은유 작가의 강의를 나도 수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그들만큼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공감하였던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글이란 본디 자기 능력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세상에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뿌린 만큼 온전히 거둘 수 있는 일이 적음을 알고 있다. 글이란 본디 자기 능력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글쓰기만큼이라도 노력하는 만큼 늘어주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글쓰기의 근육을 붙인다는 느낌으로 별 것 없는 글을 써 내려간다. 부디 결실을 맺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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