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Made Easy - StatCounter
서울, 1964년 겨울 리뷰 서울, 1964년 겨울 리뷰

서울, 1964년 겨울 리뷰

2020. 4. 30. 00:10Book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 지극히 주관적인 일기 같은 리뷰입니다

 

 

 

 

자기 전에는 팟캐스트를 한 시간 예약해 놓고 자는 편인데 어젯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오디오북을 들었다. 지난번에도 스치듯 말했던 적이 있는데 난 김승옥 작가를 좋아한다. 요즘에 김승옥 선생의 등단작인 "생명 연습"을 읽고 있는데 괜스레 서울 1964년 겨울이 읽고 싶더라고. 어젯밤에 센치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난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무진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진기행에 쓰인 내 나라 말이 얼마나 유려하고 어여쁜지는 알고 있으나 도무지 그런 플롯은 사랑할 수 없거든.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달까.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전부 보았을 뿐이다.) 그의 작품엔 항상 몸서리 처질만큼 눈 뜨고 보기 괴로운 우매한 남자 주인공이 꼭 나온다. 난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꼭 그랬다.

 

 

김승옥 작가는 나중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할 즈음 약 한 달 전쯤 작성했던 "도시로 간 처녀"를 비롯해서 장미희 씨가 출연한 "겨울 여자" 그리고 "영자의 전성시대"등이 있다. 아무래도 영화판이 돈이 더 잘 되는 모양인지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이 사탕처럼 줄줄이 성공하여 생활고도 해결하고 근사한 양옥집으로 이사도 갔다고 하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승옥 작가의 작품은 오늘 리뷰할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왜 좋아하냐고 하면 구질구질해서 좋아한다. 거지 같아서 좋아한다. 서울, 1964년 겨울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고독과 자성, 성찰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김승옥 작가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손녀딸 뻘인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글이 너무나도 잘 읽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쓰인 소설을 읽다 보면 시대가 지나면서 문체도 변화하고, 그리고 옛 작품들은 한글로 쓰였어도 한자어 표현이나 일본어 번역투가 상당하다. 읽다가 자꾸 막히면 읽기 싫어지는데 김승옥 작가의 소설은 그런 법이 없다. 앞서 싫다고 말한 무진기행도 플롯과는 전연 관계없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문장 하나하나마다 감탄하게 되거든. 그리고 가장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50년이 더 지난 작품이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도 50년 전 소설의 캐릭터들에게 묘한 공감을 하게 하는 것. 그 공감은 주로 구질구질함과 거지 같음과 끈적한 자기혐오다.

 

 

이름도 없다. 김 씨인 나와 안 씨인 안형 그리고 성씨도 알고 싶지 않은 거지일 게 분명한 사내.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되었다. 서로 이름을 묻지도 않는다. 알 필요도 없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와 안형은 25살이다. 사내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서른대여섯쯤 된 그 사내는 오늘 낮에 아내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죽었단다. 급성 맹장염을 앓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도 앓았지만 무사했던 아내를 급성 뇌막염으로 하루아침에 잃었다고 말한다.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돈은 없었어도 둘이 무척이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는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고 사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서점 외판원이어서 돈이 넉넉하지 않았기도 했고 차마 말못할 그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기분 나쁜 사천 원일까. 얼마나 죄스러운 사천 원일까. 당장이라도 빨리 써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다. 

 

 

딱 하룻밤의 이야기다 이 단편 소설. 우연히 선술집에서 이름 모를 청년 셋이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하릴없는 쇼핑을 하고 장소를 이동해 또 술을 마시면서 또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이야기. 통금 시간이 다 돼서 집에 서둘러 가려는 나와 안형을 사내가 잡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여관방에 함께 묵었다. 다음날 아침 안형이 나를 급히 깨운다. 그가 죽어버렸다고.

 

 

안형은 알고 있었단다. 그가 죽어버릴 것을. 새삼스럽지만 나와 안형이 착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았을 사내와 하룻밤을 온전히 같이 있어주었다. 분명히 당장이라도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고 싶었을 텐데도 혼자 있기 무섭다는 그의 말에 집에 가는 것을 마다하고 여관방에 묵었다. 안형은 각방을 쓰면 그가 자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정말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같이 한 방에 있어야 늘 호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약을 쉬이 삼킬 수 없는 것 아닐까. 안형은 이 이상 그와 더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의 의견대로 셋이 한 방을 묵었으면 사내가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안형은 그 사내의 죽음을 알고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 얼른 여관을 나왔다. 사내는 왜 한참이나 어린 청년들을 붙잡고 같이 밤을 보내달라 했을까. 누구라도 잡고 자기의 기구한 사연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내는 병색이 갈수록 짙어가 죽음이 가까워진 부인을 보며 아내를 보내고 나면 따라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아마도 오랫동안 해왔을 것이다.

 

 

안형과 내가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시니컬하다. 부잣집 큰 아들이고 무려 대학원생인 안형과, 인생이 내 뜻대로 잘 안 풀려 육사에 떨어져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25살짜리 청년들이지만 이미 세상에 쓴 맛을 다 본 것처럼 말한다. 항상 먹고살기 힘들고 삶이 고되다고 하지만 1960년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쥐가 생겨서 쥐를 없애면 바퀴벌레가 생기고 바퀴벌레가 생겨서 없애면 개미가 생기는 것처럼 시대마다 저마다의 문제는 안고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그때보다. 아니면 더 나빠졌을까.

 

 

사내는 아내를 팔아버리고 받은 돈을 흥청망청 쓰고도 다 쓰지 못하자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는지 불구덩이에 돈을 던져버렸다. 서점 외판원인 그는 마침 남영동이었기에 월부 책값을 받아야 할 집에 가서 책 값을 달라고 흐느껴 울며 돈을 달라고 했지만 그 주인아주머니는 매몰차게도 내일 오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같이 술을 마시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지만 이름은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 어쩌면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하지 않다. 여관의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작성한다. 타인의 아픔엔 크게 관심이 없다.

 

 

이번엔 평소와는 다르게 유튜브에서 곡을 가져오고 싶었다. 장현의 미련을 갖고 올까. 김추자의 미련을 갖고올까. 아니면 1964년이라는 제목에 맞게 1964년 발표된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을 가져올까.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김추자의 "꽃잎"을 가져왔다. 김추자가 부른 꽃잎은 1971년에 발표되었지만 왠지 쓸쓸하고 삭막한 이 소설과 느낌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아마 이런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느 추운 겨울날 그 셋이 선술집에서 어묵과 군참새를 안주로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을까 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USxBHMDxUZE

 

 

반응형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의 최전선 리뷰  (26) 2020.05.05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리뷰  (32) 2020.05.02
유시민의 공감필법 리뷰  (61) 2020.04.28
소설가로 산다는 것 리뷰  (65) 2020.04.25
쓰기의 말들 리뷰  (32)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