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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줄거리 결말 명대사 해석 l 부유하는 그들에게 가족이란 것은 어느 가족 줄거리 결말 명대사 해석 l 부유하는 그들에게 가족이란 것은

어느 가족 줄거리 결말 명대사 해석 l 부유하는 그들에게 가족이란 것은

2020. 9. 10. 16:34Film

어느 가족 줄거리 결말 명대사 해석 l 부유하는 그들에게 가족이란 것은

어느 가족 (shoplifters, 万引き家族) 2018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어느 가족 줄거리

도쿄에 사는 시바타 가족은 오사무와 노부요 부부, 아들 쇼타, 노부요의 여동생 아키, 할머니 하츠에로 이뤄진 가족이다. 이들은 하츠에의 연금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사무는 일용직 노동자로 노부요는 세탁 공장에서, 아키는 유흥 업소에서 일한다. 그런대로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학대를 당하는 것 같은 유리를 발견해 데려왔고 유리는 그들의 가족이 됐다. 유리가 그들의 가족이 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쩌면 꽤 오랫동안이나 그럴듯한 가족 행세를 하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무언가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싶던 밤이었거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날 치유해줄 수 있는 그런 영화. 그리곤 바로 히로카즈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 어느 가족은 그래서 보게 됐다.

 

얼마 전 리뷰하였던 '가버나움'은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그와 함께 대결구도에 섰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으로 2018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이전에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리뷰를 하며 히로카즈는 보통 사람의 뻔한 일상을 무척이나 아름답게 만드는데 잘 단련된 감독이라는 말을 했다. 어느 가족도 그가 감독으로서 가장 잘하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그리고 이전의 리뷰에서 몇 번 말했지만 난 감히 관객을 가르치려는 영화를 굉장히 싫어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는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명징하게 드러내지만 그 판단은 오롯이 관객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그는 그저 보여줄 뿐이다. 판단은 내 몫이다.

 

먼저 이름부터가 재밌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일본 개봉명을 그대로 옮겨온 것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원 개봉명과 많이 다르다. 일본 개봉명은 도둑 가족, 영문 개봉명은 좀도둑, 우리나라 개봉명은 '어느 가족.' 개인적으로 한국 개봉명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어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어떤 가족이 아닌 '어느' 가족인 이유. 

 

* 어느

1. 관형사 둘 이상의 것 가운데 대상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때 쓰는 말.
2. 관형사 둘 이상의 것 가운데 똑똑히 모르거나 꼭 집어 말할 필요가 없는 막연한 사람이나 사물을 이를 때 쓰는 말.
3. 관형사 정도나 수량을 묻거나 또는 어떤 정도나 얼마만큼의 수량을 막연하게 이를 때 쓰는 말.

'어느'에는 선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지만, 이 가족은 그들이 선택해서 만들어진 가족이다. 그 방법이 옳다거나 아름답다고 할 순 없어도.

 

 

※ 어느 가족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만들어진 가족


영화는 오사무와 쇼타가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며 시작한다. 둘이 무언의 암호(?)를 주고받고 자잘한 생필품과 식료품을 훔친다. 분명 아버지와 아들 같기는 한데, 저 아버지는 어떤 연유로 아이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걸까 궁금했다. 성공적인 도둑질 후 고로케를 사들고 집에 가는 길에 아무래도 부모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하는 아이처럼 보였던 유리를 집으로 데려가더라. 처음에는 고로케만 먹이고 돌려보낼 작정이었지만 유리는 이상한 가족의 일원이 됐다.

 

낡은 목조주택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아들이 있었고 처제가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한 가족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짐작했던 이유는 물론 그들이 평범한 여느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지만,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편안하며 안락해 보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처


처음 유리를 집에 데려왔을 땐 엄마 역할인 노부요는 아이를 집에다 데려다주라고 성화였다. 오사무와 함께 아이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유리의 부모가 유리가 없어진 후 말다툼하는 것을 들었다. 그 둘의 대화를 조금 옮겨보자면.. "누구 씨인 줄도 모르는 아이를 왜 나한테 키우라는 거야?", "나는 뭐 걔를 낳고 싶어서 낳은 줄 알아?"와 같은 상식 이하의 대화. 그 대화를 밖에서 듣던 노부요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들은 결국 유리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노부요의 모습을 보며 그 역시 유리만 한 나이일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이것은 영화의 장치에서도 드러나는데 둘이 함께 목욕을 하는 장면에서 노부요와 유리는 손목에 비슷한 상처가 있다. 화상을 입은 자국이다. 노부요는 다리미 때문에 입은 상처라고 말했다. 오래전에 아문 상처라 아프지 않은데도 유리는 노부요의 화상 자국을 계속 문지른다. 유리는 쇼타가 팔목의 상처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넘어져서 생긴 것이라 말했다. 그 둘의 상처는 다리미 때문도 아니고 넘어져서 생긴 상처도 아닐 것이리라.그 둘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아키는 자신을 보러 가게에 늘 찾아오는 손님에게 호기심이 일었는지 토크방으로 가는 것이 어떻냐고 물었고 대화 도중 그의 손에 난 상처를 보았다. 어쩌다 생긴 상처냐고 묻자 스스로를 아프게 하여 생긴 상처라고 했다. 아키는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 말하며 그를 안아주었다.

 

아키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아키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진 않았지만, 동생인 사야카의 이름을 업소에서 가명으로 사용하는 아키에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해를 해온 이유와도 같을 것이라고 본다. 

 

타인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 것


집의 주인인 하츠에 할머니는 처제 역할인 아키와 다른 가족보다 조금은 더 특별한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아키는 좀 독특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뭐라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유사 성행위 업소라고 말하면 되려나.. 그 둘은 함께 디저트 가게에서 후식을 먹으면서 하츠에는 아키에게 어떻게 돈을 버냐 물었고 아키는 옆 가슴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장난스레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그렇게도 돈을 번단말이야? 세상 좋아졌네."라는 식으로 말하며 아키에게 자신의 모찌 떡을 얹어 준다. 하즈에는 바람나 자신을 떠난 남편의 연금으로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간다. 아키는 동생인 사야카의 이름을 사용하며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근무한다.

 

아키가 가게에서 맘에 들었다는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자 노부요는 오사무 역시 자신의 손님이었다고 말했다. 노부요 역시 과거에 유흥 업소에서 근무를 했었고 그곳에서 오사무를 만났으리라.

 

난 뭐랄까. 그들이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한테 뭐라고 할 수 있어?'처럼 내가 떳떳하지 못하고 나 역시 결함이 있어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과는 관계없이 그들이 어떠한 편견과 평가 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이 있다면 "편견 없는 사람이 되자"란 것이다. 감히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자. 판단하지 말자.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며 부단히 지키려고 하는 것 중 하나거든. 그들은 그걸 몸소 보여줬다고 해야 하나. 난 그런 느낌을 받았어.

 

도둑질이 옳지 않다는 걸


어린 유리와 함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둑질을 하던 쇼타는 늘 도둑질을 하던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가 쇼타의 도둑질을 오랫동안 알고 있음에도 묵인해왔던 것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젤리를 건네주며 동생에겐 시키지 말라고 하셨다. 그 순간이 쇼타가 도둑질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 날이었을 거다.

 

잠깐 등장한 할아버지지만, 난 그 할아버지가 정말 어른다운 어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늘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쇼타를 보고 그가 생계형 좀도둑이라는 것을 아셨을 거야. 그러니 오랜 시간 도둑질을 묵인해 오셨던 거고. 다만 아직 어린 여동생이 도둑질을 하는 건 두고 보실 수 없었던 거지. 아이를 불러 세워 망신을 주거나 혼내는 것이 아니라 젤리를 건네주며 동생은 시키지 말라며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도둑질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던 쇼타가 오사무와 노부요에게 물건을 훔치는 것이 나쁜 거냐고 물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밖에 있으라고 일러두었던 유리가 자신을 따라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고 유리를 보호하려고 스스로 타깃이 되어 쫓기다가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사실 이 부분이 조마조마했다. 시나리오상 그즈음에는 쇼타의 도둑질이 발각되어야 했다. 마음을 졸이며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쇼타의 도둑질이 발각되는 것이 아니라 유리를 보호하기 위한 쇼타의 선택이더라.

 

추후 쇼타가 말하기론 일부러 잡혔다고 하더라고. 쇼타는 어쩌면 스스로 그 가족이 무엇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가 가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허상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떠나는 버스를 줄기차게 따라오며 자신을 부르는 오사무를 쇼타는 애써 무시했다. 그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아빠'라고 조그맣게 읊조렸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된다고 본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오사무는쇼타에게 그를  버리고 떠날 생각이었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을거다. 나중에 꼭 쇼타를 찾아갔을 것임을 안다. 난.. 안다.

 

'어느' 가족


서두에 언급하였다시피 이 영화의 이름이 도둑 가족이 아니라 '어느' 가족인 이유. 유리가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는 부모라고 할 수 없다. 노부요의 말대로 낳는다고 부모라고 할 수 없으니까. 부모가 된다는 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고된 일이잖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가족인 것을 선택했다. 유리는 자신을 방임하고 학대하던 부모 대신 이  기괴한 가족을 선택했다. 영화의 제목이 어떤 가족이 아니라 '어느'가족인 이유가 이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츠에 할머니는 남편이 바람나서 생긴 아이의 딸과 함께 산다. 그리고 그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가 삼만 엔을 받는다. 남편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하츠에 에게 남편이 외도해서 낳은 아이에게 원망의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물론 아키를 데리고 있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도 아닐 것이다. 그 돈은 그냥 받았던 거지.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고이 모아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키에겐 멀쩡한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 결함 많고 수상한 가족을 선택했다. 

 

노부요와 오사무는 이전에 불륜 관계였고 그런 관계가 들켰던 건지 오사무는 노부요의 남편을 살해한 전적이 있다. 사망한 하츠에를 앞마당에 묻을 때 처음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던 이유다. 추후에 정당방위라고 말하는 거 보면 노부요의 남편은 꽤나 폭력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부인에게 그런 일을 시킬 정도라면.. 알만 하잖아.

 

유리는 원래의 부모에게 돌아갔다. 유리의 부모는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고,  유리의 실종마저도 유치원 선생님 때문에 실종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아마 어느 정도는 현실 반영을 하였을 거라고 보는데 일본에서 실종 아동이나 아동 폭력에 대해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로 봐도 방임과 학대가 의심되는데 아이를 그대로 부모에게 보낸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그들이 쇼타와 유리를 양육한 방식. 할 줄 아는 게 도둑질밖에 없어서 도둑질을 가리킨 것과 남의 집 아이를 무작정 데려와 키우던 것. 연금을 타 먹으려고 제대로 된 장례는커녕 사망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 전부 상식적이지 않다. 굳이 나누라면 이것은 나쁜 행동이다. 상식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굉장한 수준의 범죄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었던 것. 피로 맺어진 가족에게 느끼지 못하고 부유하던 그들을 '가족'이란 끈으로 결속하여주었던 것. 그게 바로 진짜 가족 아닐까..

 

마지막 쇼타의 부상으로 모든 범죄가 드러난 후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어느 가족에게 상식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기인형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어떤 면에선 상식적이지 않다. 공기인형에서 마지막 노조미는 결국 준이치를 살해했다. 노조미는 그의 몸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것이 다였지만 결과적으로 공기인형이 아닌 사람이었던 준이치는 사망했고 노조미는 그런 준이치를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보내주었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땐 시신을 나체로 비닐에 담아 유기한 끔찍한 사건이다.

 

겉으로 보기엔 상식적이지 않지만 그 안은 사실 무척이나 상식적인 거. 어쩌면 히로카즈 감독만의 화법일지도 모르겠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


TV시리즈 제작자 출신답게 홈 드라마 형식의 영화를 선보이는 그가 유독 가장 잘하는 거라면 바로 어린 배우들과의 교감일 것이다. 

 

그의 영화엔 항상 어린아이가 등장한다. 어린이와 교감하고 그들에게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는 아이에게 따로 대본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현장에서 직접 아이와 호흡하며 연기를 지도한다. 쇼타와 유리 역을 맡았던 죠 카이리와 사사키 미유는 그런 부분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얼마 전 리뷰하였던 가버나움의 '나단 라바키' 감독도,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역시 아이들에게 연기 지도를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가버나움의 자인이 실제로는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임에도 그런 연기를 선보인 것 역시 그가 영화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나단 라바키의 뛰어난 연기 지도도 한몫했을 거라 본다. 가버나움 리뷰에서 과한 표현인 것 같아 말하지 않았지만, 난 주인공인 자인이 담배를 물고 세상을 바라보는 12살 아이의 눈빛에서 세상의 단맛 쓴맛을 모두 본 50대 중년 남성의 눈빛을 읽었다.

 

어느 가족의 쇼타 역시 눈빛에 그 무언가가 있다. 말주변이 부족해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눈빛 덕에 죠 카이리가 쇼타 역을 맡았겠지.

 

마지막으로 어느 가족에서 좋았던 대사를 알려드리며 리뷰를 마칠까 한다. 아마 앞으로도 종종 난 이 영화를 찾을 듯싶다.

 

노부요가 유리가 입고 있던 옷을 전부 태워버리고 머리를 잘라 '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했던 말이다. 어쩜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맞고 지냈던 건 네가 나빠서가 아니었어.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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