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7. 20:38ㆍTV serie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Through the Darkness) 2022
원작 : 권일용, 고나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연출 : 박보람
출연 : 김남길, 진선규, 김소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줄거리
사이코패스와 같은 무동기 연쇄 살인 범죄가 생경하던 시절,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비웃음을 받던 시절. 악의 마음을 지닌 이들을 끈질기게 연구하며 들여다봐야 했던 프로파일러 송하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 웨이브 오리지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전기
릴리즈 되기 전부터 나름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한국 작품은 거의 소비하지 않지만, 장르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군다나 한국의 프로파일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권일용 님의 전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더욱 그랬다.
범죄 심리학을 수강할 때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의 사건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리고 권일용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보기도 했어서 그가 시리즈 안에 얼마나 많은 자문을 제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몰입감이 상당했는데,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직접 수사하고 인터뷰했던 범죄자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김해선,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에서 모티브를 받은 캐릭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몰입감이 뛰어났던 이유는 각 범죄자들의 특성, 말투, 행동. 그리고 그들의 같잖았던 워딩까지 소름 끼치게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일 테다.
권일용을 모티브로 한 "송하영"
드라마로 각색이 됐기 때문에 권일용 프로파일러로 모티브로 한 캐릭터 '송하영'은 실제에 허구를 집어넣어 몹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어렸을 때 우연한 사고로 물에 빠져 사망한 여성을 본 뒤로 생명에 대해 남들과는 조금 더 심연한 시선을 지니게 되는데, 이 사건은 그가 '경찰'이 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90년대 말. 경찰이 폭력 행위로 억지 자백을 끌어내는 게 유별나지 않았던 시대에 송하영은 누구도 반가워하지 않고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프로파일러'가 되기를 선택한다. 어리숙했던 그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숙련된 프로파일러가 되어가고, 악의 마음을 읽어갈수록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고 스스로가 다쳐 망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범죄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쥐어 사건을 수사하는 전문 프로파일러로 성장한다.
뭐. 뻔하지만 악에 대항하는 유일한 것은 선이 아니겠나.. 송하영은 사건의 피해자들과 유가족을 늘 마음에 지니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과 마음의 부채를 늘 지니고 살았던 이라고 보였으니까.
이 시리즈가 하고 싶은 말도 그것이다.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을 기억하는 것. 상처를 입은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경찰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그들을 대하는 것.
그렇기에 송하영처럼, 국영수처럼, 지나칠 정도로 올곧고 선한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시청자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키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장르물의 한계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작품이 약간 '전기'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치 위인전 같은 느낌. 극 중 송하영은 답답하면서도 우직한 성품인데 그것이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의 선배인 국영수 팀장과의 대화에서도 오글거릴 때가 더러 있었다. 약간 영화 <인천 상륙 작전> 볼 때 같은 느낌.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부끄러운 그런 대화.
신파 요소도 당연히 있었다. 하나 거북하지는 않았을 정도.
마지막으로, PPL.
몇 달 전 종영한 김은희 작가의 <지리산>이 흥행에 실패했다. 매력적이지 않는 서사와 더불어 과도한 PPL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그에 비견할 건 아니다. 그러나 시청자 입장에서 왜 회식만 하면 왜 주야장천 "곱창"만 먹는지. 믹스 커피 하나 타 먹으면서도 혓바닥이 왜 그렇게 긴 건지.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졌다. 과도하게 줌인한 곱창과 노란 머그잔에 담은 맥심 커피믹스는 어쩔 수 없이 극의 몰입감을 방해하고 깨버리기까지 하니까.
물론 토종 OTT 서비스인 웨이브가 글로벌 기업인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처럼 거슬리는 PPL 없이 자체 제작 시리즈를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넣어야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범죄자 "남기태"
다른 캐릭터도 그랬지만 정남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인 "남기태"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남기태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중희 님이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신 것 같았다. 그가 단순히 정남규가 검거 당시에 입고 있었던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건 재현할 때 살인을 저지르는 스스로에게 도취돼서 약이라고 한 듯한 황홀한 모습을 보이던 것. 유가족에게 발길질을 하고 차에 앉아 뿌듯한 듯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던 것. 수사 중에 어리숙하고 천진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사람 죽이는 얘기할 때는 눈이 돌아가는 것까지 살아생전의 정남규가 오버랩돼 소름이 돋았다.
본디 2차 저작물로 시리즈화되어 나온다면 당연히 자극적인 요소도 필요할 것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매력적인 스토리의 변용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존엄'을 엄숙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선 범행의 잔인성, 폭력성에 포커싱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범행 도구와 수법은 보여주지만 극의 진행을 위한 만큼만 보여주었고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잔혹한 장면은 앵글 안에 담지 않았다. 각색되었지만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됐고 그 사건엔 피해자가 있고 유가족이 있다. 나는 제작자들이 그것을 염두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간만에 잘 만들어진 한국 시리즈를 봤다.
< 유영철 범죄 흔적을 따라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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