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0. 17:22ㆍFilm
디스 아메리카노 (This Americano) 2021
감독 : 권유주
출연 : 변세희, 박아름, 한재하, 김희상
디스 아메리카노 줄거리
영화감독 지망생인 수진은 고대하던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과 수중에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애연가인 그는 별 수 없이 말보로 레드에서 디스 오리지널로 담배를 바꿨다. 오디션 중에 만난 전 남자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해가며 영화를 만들려고 안간힘인데 수진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 다가왔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은근 좋아한다. 뭔가 구질구질하고 궁상맞으며 망한 얘기. 응, 내가 양아치 구석이 있는 건지 은연히 그런 얘기를 좋아한다. 왜 망한 얘기를 좋아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야. 너 안 망해봤어? 그럼 관심 없어."
이런 거지.
영화의 이름은 <디스 아메리카노>로 짧은 두 단어의 조합인데, 퍽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말보로 레드에서 '디스' 플러스로. 캐러멜 마키아토에서 시럽을 있는 대로 때려 부은 '아메리카노'가 합쳐져 "디스 아메리카노"가 되었거든.
※ 영화 <디스 아메리카노>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전 연인과의 조우
나는 감독. 너는 배우.
같은 영화판.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수진과 연우는 사랑하다 이별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만나버렸다.
다행이면 다행인 건지 둘의 처지는 이별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만약 둘 중의 하나가 유달리 잘 됐더라면 더 어색한 상황이 됐을 텐데, 서로의 처지를 보고 이전에 묵은 앙금이 금방 허물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별 후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서로 얘기하고 나서 "너도 힘들었겠구나. 나도 그랬는데." 같은 거. 같은 바닥이니 더 그랬을 거다.
디스 아메리카노
수진은 말보로 레드에서 디스 플러스로 담배를 바꿨다.
연우는 단 음료를 좋아한다. 둘이 연애할 때 카페에 가면 늘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에 휘핑크림을 잔뜩 올려 먹곤 했다. 그런 그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얼핏 보기엔 취향이 바뀐 건가 싶다. 말보로 레드가 지겨워졌거나, 달콤한 음료보다 쌉싸름하고 고소한 아메리카노가 더 좋아졌다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수진이는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수중에 있는 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없는 살림에 지출을 줄이려면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일 텐데, 흡연가인 수진이 담배를 끊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담배를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을 줄일 수도 없고.
수진이는 말보로 레드에서 디스 플러스로 바꿨다.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연우가 단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휩 크림이 잔뜩 올라간 캐러멜 마키아토를 먹고 싶다.
그렇지만 궁핍한 생활에 6천 원에서 만원 정도 하는 캬라멜 마끼야또를 먹는 것은 무리다. 그는 4천 원에서 5천원이면 먹을 수 있는(그래봤자 천원 이천 원 더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다만 단맛은 포기할 수 없으니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잔뜩 들이부어 시럽과 아메리카노가 1:1 비율인 설탕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이별한 동안 바뀐 서로의 취향이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실상이 짠내 나는 연유였다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그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그들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났다.
또 망했음
별안간 또 망했다.
그나마 겨우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제작이 인어공주인양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담배까지 바꿔가며 아등바등 이었는데, 인생이 참 얄궂다.
그래도 걱정되지 않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긍정적이고 대책 없는 기운 때문이다.
우연히 길에서 5만 원을 주웠다.
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갔고, 주연 배우의 기회도 날아갔다.
어쩌다 생긴 꽁돈 5만 원으로 수진은 그동안의 갈증을 보상이라도 하듯 말보로 레드를 한 번에 다섯 개씩을 물어 태우고, 연우는 달달한 음료에다가 휘핑크림을 잔뜩 올려서 주문해 먹는다. 이것은 파티다. 파티.
달콤한 커피 한 잔. 좋아하는 담배 정도가 이렇게도 행복할 일인가 싶다. 이렇게까지 쉽게 행복할 수 있는데. 참 인생 뭔가 싶고. 이 순간만큼은 당장에 닥친 문제를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5만 원이라는 돈은 가공할 만한 금액이다.
방구석에서 질질 짜고 내 인생 왜 이러냐고 우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서 보기가 좋다.
나는 삼국지에서 '조조'와 '사마의'를 가장 좋아한다. 사마의는 아들이 전쟁에 백 프로 질 상황에 몰렸을 때 "이기는 것이 중요한 만큼 잘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이기기 전에 잘 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흥분해서 상황을 그르치려는 아들에게 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가장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잘 져야 후에 힘을 도모하여 상대를 쳐야 한다고 교육한다. 아비가 아니라 작전을 지휘하는 장군의 지위에서 말한 것이다. 지더라도 1을 잃는 것과 100을 잃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지고 나서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잘 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망했어? 야나두!
한 번도 망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수도 없이 망해본 사람이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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