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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리뷰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리뷰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리뷰

2020. 4. 9. 21:19Book

 

 

며칠 전 오드리 헵번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리뷰를 하려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다시금 보았다. 보고 나니 또 당연하게도 원작 소설이 다시 읽고 싶더라. 2013년도에 읽었으니 7년 만이다.

 

 

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영화가 좋고 미드가 좋고 책이 좋아서 그걸 주제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블로그를 시작함으로써 내가 좋아하던 작품들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도 좋더라. 원작 소설도 다시 읽게 되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리뷰하면서 소설과 달리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로맨틱 감성이 담뿍 묻어있다는 말을 했었다. 반면 소설은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 영화 속처럼 반질반질하고 예쁜 아파트도 아니다. 싸구려 소파와 다락방용 가구들이 들어차 비좁기 그지없는 꾀죄죄한 한 칸짜리 아파트다. 홀리 골라이틀리 역시 영화처럼 천진난만한 여성이 아니다. 화려한 티파니 다이아몬드 목걸이만 맹목적으로 탐미하는 여성이 아니다. 홀리는 또래 19살 아가씨 이상으로 적당히 약았고 현실적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주관이 있는 여성이다. 홀리는 세상이 나쁘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이 그로부터 느낀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 사람은 범죄자야. 이 사람은 나빠." 해도 그녀가 그 사람이 좋았으면 그만이다. 확고한 자신의 주관대로 사람을 판단하니까 오히려 편견이 없다. 홀리는 그런 여성이다. 영화처럼 동화 속에 사는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여성이 아니다. 물론 나는 영화 속 헵번이 연기한 홀리 골라이틀리도 무척이나 사랑한다. 헵번 특유의 우아하고 세련됨 때문에 홀리는 더더욱 사랑스럽게 그려졌거든. 마릴린 먼로였어도 물론 좋았겠지만.

 

 

기욤 뮈소의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오만이다."라고.

난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지만, 지금은 책 이름만 기억하고 스토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구절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20살의 나에게 누군갈 너무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었거든.

누구나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너무 비밀스러워 스스로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는 어두운 상자 말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나 역시 누군가가 그 부분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바로 거리를 두고 경계한다. 날을 잔뜩 세우는 거다. 사랑한다고 그의 모든 걸 알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도 그럴 테니. 난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그뿐이다. 그의 어두운 상자마저 기꺼이 사랑하니까.

 

 

하물며, 사랑하는 사이도 이런데, 이웃사촌 관계면 어떨까. 홀리에게는 누군가 너무 사적인 질문을 하면 콧잔등을 만지는 버릇이 있다. 그건 상대에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란 뜻이다. 소설 속 '나'가 홀리가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콧잔등을 만진 것처럼. 어느 시골 마을 출신의 옥수수를 몰래 훔쳐 먹던 삐쩍 마른 고아였던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난 홀리를 백번 이해했다.

 

 

언젠가 김기덕 감독이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면서 관객들이 상업영화에만 너무 편중되어 있어 아쉽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난 그가 미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 보았다고 해서 그나 그의 작품을 좋아했다는 건 아니다. 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보았던 것뿐이다. 오히려 그가 저질렀던 일련의 정황들을 알고 나서 하나도 의아하다거나 놀랍지가 않더라. 그의 작품을 보면 그의 세계관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의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미루어 짐작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사람일 거라고.

 

 

그의 작품은 불편하다.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상업 영화를 '주로' 본다고 해서 수준이 낮은 게 아니다. 그의 작품이 너무 '고상해서' 보지 않는 게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삶에 치여 사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주말에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당신의 작품이 모처럼 시간 낸 화창한 주말 연인끼리 보기에, 가족끼리 보기에 적절한 작품이냐고 도리어 그에게 되묻고 싶더라. 나 역시 그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볼 때는 조조로 혼자 가서 보곤 했으니까.

 

 

물론 "티파니의 아침을"의 원작 소설과 김기덕 감독의 영화랑 비교하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만큼 불편하거나, 치중된 작품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소설을 그대로 그려낸 영화였다면 이 영화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거다. 홀리와 폴의 로맨스가 없었다면. 홀리와 폴의 아파트가 해도 들지 않고 너무 낡아서 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면. 홀리의 순수하고 천진함보다 영악함과 계산적인 모습이 더 드러났다면. 어땠을까.

 

 

소설 속 홀리는 기어코 브라질로 떠나버렸다. 비로소 버려버린 뒤에서야 서로가 서로의 것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누구든 누구를 소유할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캣이라고 부르며 키워오던 고양이도 버려버렸다. 소설 속 내레이션 역할을 하는 '나'와 홀리의 인연도 끝나버렸다. 소설 속 '나'는 홀리에게 호감이 있었던 듯 하지만 그게 깊은 감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지한 감정이었다기보다 홀리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구나 홀리를 사랑했으니까. 홀리는 '나'에게 전혀 로맨스의 감정은 느끼지 않은 것 같고.

 

 

아마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그 여인은 홀리가 맞았을 거다. 홀리는 어쩌다가 아프리카까지 가게 된 걸까. 그 이후는 또 어떻게 됐을까. 홀리는 누군가에게도 정착하지 않고 홀리의 명함 속 '여행 중'이라는 글귀처럼, 아마 전 세계를 여행하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커포티의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할리우드 스타일로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만든 것은 정말 잘한 것이다. 원작자인 커포티가 조금 서운했을지는 몰라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리뷰가 보고 싶은 분들은

2020/04/02 - [Film] - 볼 때마다 설레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볼 때마다 설레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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