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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아는 것 :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왕가위 부끄러움을 아는 것 :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왕가위

부끄러움을 아는 것 :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왕가위

2022. 10. 14. 22:52Meaningless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로 멜로 영화를 많이 봤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었다.

 

평소 홍상수 감독 영화의 불륜과 간통의 서사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를 분노를 느끼곤 했었다. 지질하고 못난 이들이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고, 비겁한 이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불륜을 소재로 한 <The Affair>와 같은 시리즈도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불륜의 코드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작품 자체를 소비하지 않거나, 소비하게 되더라도 매우 편향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우습게도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면서도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배우자가 있는 해준과 남편과 사별한 서래가 사랑하는 서사다. 근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나에게 그 많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최애 영화가 되었다.

 

그런 소재를 함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중경삼림>이고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화양연화>다. 화양연화는 각기 배우자가 있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서사다. 초우와 첸 부인은 자신들의 배우자끼리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다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화양연화>의 소재 또한 불편해야 하는데 왜 난 화양연화를 좋아하는 걸까.

 

혼자 며칠을 골똘히 생각하고선 그 이유를 찾아냈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의 차이였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서래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서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부인이 있는 이포로 전근까지 했다. 서래를 너무 사랑해서 서래를 보지 못한 날을 하루하루 셌고 오랜 기간 동안 잠을 못 자 수척한 몰골이 될지언정 자신이 한 번 내지른 선택을 물리지 않았다.

 

서래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 때문에 '붕괴'되었다는 말을 들은 뒤로 그를 보내줬다. 그를 잊으려고 이상한 남자와 결혼하고 해준을 잊지 못해 그가 있는 이포에 갔어도, 그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을 택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서래의 선택이 옳다고 할 수는 없어도, 서래가 저지른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서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해준과 서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할지언정,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

 

<화양연화>에서 초우는 싱가포르로 전근을 간다. 이미 회사에 첸 부인과 만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첸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무 사랑해서 싱가포르에서도 그를 잊은 적이 없고 다시 홍콩에 돌아와서도 함께 살던 건물을 찾았고 캄보디아에 가서도 행여라도 누가 들을까 돌 틈에 첸 부인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흙과 풀을 덮었다. 

 

첸 부인은 회사의 대표에게도 외도를 하고 있지 않냐는 눈총을 받는다. 정작 그 대표도 젊은 내연녀를 두고 있으면서도 첸 부인을 흘겨본다. 집주인은 늦게 들어오는 첸 부인에게 젊은 부인이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에둘러서 경고한다. 첸 부인은 초우를 사랑하지 않아서 싱가포르에 보내준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이별한 것이 아니다.

 

초우와 첸 부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주변의 평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 스스로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행동과 사랑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 사랑이 평생을 못 잊을 화양연화였어도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헤어질 결심>과 <화양연화>가 좋았던 것이었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캐릭터들은 부끄러움이 없고 몹시 뻔뻔하다. 그들의 사랑에 간절함과 진실됨은 없다. 결핍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무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보다 그의 영화의 캐릭터들처럼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신의 얄팍하고 조잡한 마음을 가장 우선으로 하며 비겁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에 더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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