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6. 14:00ㆍFilm
아무도 모른다 영화 결말 줄거리 실화 l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4
감독, 각본, 제작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아키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칸 하에나
아무도 모른다 줄거리 * 스포 포함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며 아이들에게 인사 없이 메모와 약소한 돈을 남기고 사라진 엄마를 큰아들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막내 유키는 엄마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서로 흩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엄마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아이들은 엄마가 정해준 규칙을 무시하고 서로 똘똘 뭉쳐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생활비가 떨어져 공과금을 내지 못해 단전, 단수를 겪어 아이들은 공원에서 물을 받아 생활하고 그러던 와중 사고로 막내 유키가 사망한다. 비행기를 보고 싶어 했던 유키를 공항 근처에 묻어주고 영화는 끝이 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가 그만의 시선으로 어떻게 영화를 그려내 가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처음 이사를 오고는 "남편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라며 인사를 건넬 때, 넌지시 아빠가 없음을 짐작했다. 가족 드라마 성격을 띠는 그의 영화는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 속은 무척이나 곪아있는 가족 구성원을 다룬 이야기 거나,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가족이 아닌 유사가족의 형태를 그린 작품을 만들곤 하니까.
※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글입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가족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여행용 트렁크에 담아 옮겨와야 했을까 싶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큰 딸 교코까지 집에 오니 총 네 아이다. 처음엔 영화 꿈의 제인의 제인처럼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둬 키우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넷씩이나 낳았다고 생각하기엔 무리였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아이는 모두 그가 낳은 아이다. 영화에서 정확하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아이들의 아빠는 전부 다 다른 듯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알 수 없다. 아버지를 짐작할 수 없는 네 아이를 낳은 건 문제 될 게 없다. 다만, 부모라면. 엄마라면. 온당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잖아. 보호해야 하잖아.. 아이들에게 이별의 언질도 없이 큰아들 아키라에게 쪽지 하나와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남겨버리고 엄마는 떠나버렸다.
중학생은 족히 돼 보이는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다. 보통은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면 지자체나 학교에서 가정 방문을 하고 조사를 할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는 걸 보았을 때 '아.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구나..'싶었는데 그게 맞았던 모양. 아키라는 엄마에게 학교를 보내달라고 하지만 학교를 보내주지 않는다. 아마 장남인 아키라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걸 보면 줄줄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을 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키라는 "또?"라고 말한다. 여태껏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마다 아이들을 집에다 두고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았으리라. 엄마는 짜증을 내며 왜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행복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야하는 만큼 아이들 역시 행복해야 한다.
엄마는 그의 매니큐어를 실수로 떨어뜨린 교코에게 엄마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말라며 바닥에 묻은 매니큐어를 닦아낸다. 그는 바닥에 있는 매니큐어는 닦아내면서 교코의 손에 묻어버린 매니큐어엔 관심이 없다. 교쿄는 잘 지워지지 않을 매니큐어를 다른 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워버린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곤 한다. 어느 가족 역시 노모가 사망했는데 연금을 타 먹으려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사건이 모티브가 됐던 영화다. 아무도 모른다 역시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화 <룸> 역시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룸과 아무도 모른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실화보다 아름답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룸은 범죄자인 잭이나 피해자인 수잔의 시선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던 꼬마 '잭'의 시선으로 그려냈고 가해자가 친부였던 반면에 영화에서는 생판 모르는 타인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에 발생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 역시 현실보다 아름답다.
*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1988년 도쿄도 도시마구의 모 아파트에서 어린이 4명만 두고 어머니가 집을 나갔던 사건. 아파트의 주인의 신고로 드러난 사건이며 그동안 주변 주민들은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취학 통지는 오지 않았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지만 실제의 내용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진 않았다. 영화 속에선 네 아이가 등장하지만 사실 셋째는 출생 직후 사망했다. 영화에서 막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망했지만 사실은 큰아들의 친구들이 아이가 계속 울어 시끄럽다며 옷장 위에서 몇 번이나 떨어뜨려 머리에 손상을 입어 사망했다. 그 당시 큰아들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사망 당시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종종 아이를 폭행했었다고 하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던 야기라 유야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야기라 유야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칸 영화제의 수많은 영화들을 봤지만 결국 기억에 남은 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 소년의 표정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자서전에서 야기라 유야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아이다 싶었다고 했다. 2018년에 개봉한 어느 가족의 죠 카이리가 제2의 야기라 유야 소리를 듣는 촉망받는 배우라고 하던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스스로가 배우들을 선택하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야기라 유야를 봤을 때 눈빛이 남달랐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를 보며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 뜬금없을 수 있는데, "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그가 처음 데뷔하였을 땐 내가 초등학생이어서 그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 박진영의 제자라더라. 그래서 그런지 창법이 박진영이랑 닮았네.라고 생각한 게 다였다. 그리고 요즘엔 우도환 씨처럼 그리고 비씨처럼 그런 얼굴이 인기인데, 그 당시는 그런 스타일이 인기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난 2년 전부터 깡팸이었는데 비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의 데뷔곡인 '나쁜 남자'를 띄워주더라. 어린 날의 내가 그를 보았을 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어른이 된 내가 그를 보니 그의 눈에 얼마나 독기가 가득한지 보여서 놀랐을 정도. 될 놈의 눈빛이구나 싶었달까. 세상을 다 씹어먹고 말겠다는 눈빛. 어떻게든 뜰 거라는 눈빛.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눈빛. (궁금하신 분들은 꼭 찾아보세요!) 비에게서 보였던 그 눈빛과 야기라 유야가 지닌 그 눈빛은 결이 비슷하다. 아키라의 것은 총명하면서도 강단 있으면서도 유수에 찬 눈빛이랄까.
아키라는 먹을 것을 사고 잠깐 만화책을 보는 도중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도둑으로 몰렸다. 억울한 상황이지만 침착하게 자신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들지도 않고 아니라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가 한 짓이 아니니 그저 묵묵히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다. 아이에게 부모님 연락처와 학교를 추궁하던 편의점 사장은 아키라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고는 호빵 하나를 건네주었다. 만일 아키라가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는 일하러 멀리 가셨다고 해서 아이에게 말을 함부로 했다면 정말이지 화가 났을 거야.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어느 가족의 리뷰를 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평가를 내 몫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여과 없이 보여줄 뿐이지 그 안에 감독의 의도나 편견은 없거든.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걸 보며 섣부른 연민이나 동정심이 일기보단, 기특하다는 마음이 앞섰다. 단수가 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궁리를 마련한다.
아키라는 남은 돈을 털어 동생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음식을 세 봉지나 사고는 봉지 두 개는 본인이 들고 봉지 하나는 둘째인 교코가 든다. 동생들에겐 자그마한 어떤 짐도 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아키라와 교코가 들고 있는 봉지의 무게가 그 아이들이 나누어 감당하고 있는 동생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엄마고 아빠니까.
동생인 시게루와 유키는 오빠와 언니에게 어리광 피우는 일이 없다. 엄마가 외출을 철저히 막아서인지 금방 커버리는 아이들에겐 옷도 신발도 금세 작아져서 유키는 자신의 발보다 훨씬 작은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오빠에게 새 신을, 새 옷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한창 먹고 싶은 게 많을 나이인데도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며 오빠를 다그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유키가 사망한 후 유키가 비행기를 보고 싶어 했으므로 공항 근처에다 묻어주고 돌아오며 아이들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전히 물은 나오지 않고 전기는 나오지 않는다. 엄마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원에서 물을 받고 편의점의 음식을 얻어먹으며 버텨나가는 것 그대로다. 아이들 얼굴에 그늘은 없다. 웃음이 가득하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떻겠냐 넌지시 말했던 편의점 누나에게 아키라는 그렇게 하면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에도 한번 그랬던 적이 있다고..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불편해도 서로가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다.
정돈되지 않은 집, 잘 씻지 못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모습. 영화 러닝타임 내내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옷을 입는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어떤 것도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접근하는 방식
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감독이 있으면 필모그래피를 보고 결국 전부를 해치워야 하는 성격인데, 그러다 보면 그만의 고유한 패턴이 보인다.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해서 그가 출판한 시대물과 미스터리물은 거의 다 읽었는데 그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는 그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선한 인물을 황망하게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다 보면 '음.. 얘는 죽겠는데?'싶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거든.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꼭 '죽음'을 넣는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그게 영화의 변화구가 된다. 흩어진 가족을 모으는 구심점이든, 아니면 그럭저럭 잘 유지해왔던 가족이라는 형태가 어그러지든.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가장 약하고 어린 막내 유키가 사망했다. 그럼 관객인 내 입장에선 허탈한 느낌이 든다. 그때서야 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채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엄마를 비롯한 다수의 방임으로 일어나지 않아도 됐던 사건이 일어난 거니까.
엄마가 아이들을 반년 넘게 방치하였고 사고로 어린아이가 사망한 끔찍한 사건이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른인 엄마나 아니면 주변 인물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려냈다. 끔찍한 현실이지만 영화가 그렇게 끔찍하게 그려지지 않은 이유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아직 보지 않은 그의 작품이 많지만 하나하나 소중히 꺼내먹는다는 생각으로 그의 작품을 아껴가며 감상 중이다. 뭐 하나 저릿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것이 그의 매력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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